필리핀 국적 A씨는 한국인과 결혼한 누나의 초청으로 2019년 계절 근로자로 입국했다. A씨는 한국에서 5개월 근무하고 필리핀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한국에 남아 불법 체류자가 됐다. 필리핀에 돌아가면 한 달에 약 1만5000페소(약 36만5000원)를 벌지만, 한국에선 최저임금을 받아도 그보다 5~6배 많은 월급을 받기 때문이다.

최근 다문화 가정이 늘면서 결혼 이민자의 가족을 계절 근로자로 초청하는 비자 발급이 급증하고 있다. 가족 초청 비자는 국내에 연고가 있는 결혼 이민자의 가족을 초청해 일손이 부족한 농촌을 도우면서 외국인 근로자의 이탈을 줄이기 위해 설계됐다. 가족이 인근에 있으면 이탈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실제 계절 근로자 이탈률(이탈 인원을 참여자로 나눈 비율)은 2021년 17.1%에서 지난해 1.6%로 줄었다.

전남 장성군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밭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가족 초청 계절 근로자의 입국 절차가 상대적으로 느슨해 불법으로 입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외국인 계절 근로자 제도는 크게 지방자치단체가 해외 지자체와 업무협약을 맺고 일할 사람을 데려오는 방법(E-8-1 또는 E-8-3 비자)과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해외에 있는 가족을 초청하는 방법(E-8-2 또는 E-8-4 비자)이 있다.

지자체 초청 근로자는 지자체가 서류를 검토하지만, 가족 초청 근로자는 고용주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기 때문에 고용주와 연결 고리가 있는 브로커(중개인)는 쉽게 외국인 근로자를 한국에 데려올 수 있다.

한 이주민 단체 대표는 “가족 초청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계절 근로자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불법 브로커에게 새로운 돈벌이 창구가 되고 있어 관리를 꼼꼼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한국에 체류 중인 계절 근로자는 총 4만6748명이다. 이 가운데 가족 초청으로 입국한 근로자는 2만5218명(54%)으로 지자체 MOU(2만1530명)보다 많았다.

가족 초청 계절 근로자는 결혼 이민자가 본국의 가족이나 친척을 해당 지자체에 추천하면 지자체가 초청하는 절차를 밟는다. 추천자는 거주 지역이 아닌 다른 지자체에 추천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대다수 지자체는 다른 지역 결혼 이민자 가족·친척의 초청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결혼 이민자가 거주하는 지역에서만 본국의 가족이나 친척이 근무할 수 있는 것이다.

초청한 가족이 지역을 이탈하면 계절 근로자 프로그램 제재 규정에 따라 추천자는 1년간 추천이 금지되고 허위로 추천하면 영구적으로 추천 자격이 박탈될 수 있다. 이탈한 근로자는 적발 시 강제 출국되고 재입국이 금지된다.


하지만 브로커들은 결혼 이민자의 주소지를 허위로 전입 신고하는 등 서류를 조작해 고용주와 근로자를 연결하고 있다. 현행 출입국관리법은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근무처를 변경·추가하거나 체류자격 변경을 신청할 때 위조 문서를 제출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필요 서류를 허위로 만들기도 한다. 계절 근로자로 입국하려면 본국에서 1년 이상 농·어업에 종사했다는 증명서나 농·어업 기술 자격증 또는 학위증이 있어야 한다. 한 행정사 사무실 소속 브로커는 입증 서류에 대해 “입국하려는 사람이 현지에서 논이나 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되니 문제없다”고 말했다.

가족 초청 계절 근로자 모집 광고. 외국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브로커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계절 근로자는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지급한다. 이주민 단체에 접수된 외국인 근로자 B씨의 사례를 보면, B씨는 가족 초청 비자로 입국한 뒤 5개월 동안 40만원씩 총 200만원을 브로커에게 수수료로 지급했다. B씨는 추천해준 친척(결혼 이주민)에게도 매달 20만원씩 입금했다. 서류 작업을 위해 고용한 행정사에게도 수수료를 냈다.

과도한 수수료 부담을 지는 외국인 근로자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불법 체류자가 되는 등 불법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또 불법으로 일하다 보니 일하기로 한 곳이 계약 조건과 다르거나 초과 근무 수당을 주지 않아도 제대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불법 외국인 근로자는 ▲취약성 악용 ▲사기 ▲가혹한 생활 및 근로 조건 ▲협박 및 위협 ▲신체적 폭력 ▲임금 지급 거부 ▲과도한 초과 근무 등 강제 노동을 할 가능성이 커지는데, 최근 미국은 강제 노동 실태 조사를 강화해 외국인 근로자가 강제 노동으로 생산한 제품·농수산 식품은 미국 수출이 막힐 수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가족 초청 계절 근로자 기준을 강화했다. 기존에는 4촌 내 최대 20명까지 계절 근로자로 추천할 수 있었으나 올해부터는 2촌 내(배우자 포함) 10명으로 제한했다.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장은 “가족 초청 제대로 전문 브로커뿐 아니라 일부 결혼 이주민까지 브로커로 변질되고 있다”며 “타 지역에서 계절 근무자로 근무하는 사람이 늘면서 피해 사례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근로 참여 시 추천자의 거주지와 비용 지출 등에 대한 검증 절차를 만들어 브로커가 개입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