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9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등 시민단체가 장애 외국인 여성의 생존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년여 전 '우리나라 태생' 중증장애 외국인이 추방 위기에 내몰린 사례를 계기로 드러난 정부의 제도적 허점이 해결될지 주목된다.

5일 인천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법무부는 최근 '국적업무처리지침' 대상자 확대를 골자로 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대해 '수용' 의견과 함께 이행계획을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2022년 9월 시민사회단체 연대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왕모(52)씨가 귀화 신청, 건강보험료 결손처분 제외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는 내용으로 인권침해 진정을 접수한 바 있다.

이에 국가인권위는 1년 넘게 조사를 벌였고, 올해 4월 “장애로 인해 경제활동이 쉽지 않고, 소득이나 재산이 낮은 외국인은 귀화 관계 법령에서 요구하는 생계유지 능력을 갖추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며 법무부에 개선을 요구했다.

국가인권위에 따르면 국적업무처리지침은 2022년 1월 체류 외국인 유형이 다양해지자, 특별한 배려가 필요한 장애인 등 귀화신청자의 생계유지 요건을 완화하기 위해 일부 개정된 적이 있다.

귀화를 원하는 외국인은 반드시 생계유지 능력이 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재산과 소득, 부동산 등으로 본다. 이 부분을 국적업무처리지침 개정을 통해 장애인증명서나 종합병원 진단서 등의 증빙자료로 갈음할 수 있게 됐다.


▲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장애 이주 여성 관련 익명 결정문 중 일부.
그러나 부모가 '대한민국 국민'이거나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사람' 등으로 적용 대상을 한정했다.

대만 화교 부부에게서 태어난 왕씨는 해당하지 않는다. 보호시설 측은 2022년 7월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귀화를 신청할 당시 부정적인 의견을 들어야 했다.

법무부가 이번에 권고를 수용하면서, 왕씨처럼 '제도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 외국인의 귀화를 더 품을 수 있는 방향으로 법이 보완될 전망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역시 취약계층 외국인에 대해 '건강보험료 결손처분' 사유를 확대하거나, 별도의 기준을 정하라는 국가인권위 권고에 따라 역시 내부적으로 검토 절차를 밟고 있다.

생계형 건보료 체납자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이미 수년 전부터 건보공단은 결손처분 사유를 확대해왔다. 재산·소득은 물론 장애·질환, 채무·빈곤 등 약 20개에 달한다.

▲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장애 이주 여성 관련 익명 결정문 중 일부.

그러나 외국인은 '기타사항'으로 분류, 사망이나 장기출국과 같은 사유만 적용했다. 중증 장애인 왕씨가 400만원대 건보료가 밀려 결손처분을 신청했음에도 거절된 배경이다.

귀화와 결손처분 모두 수요가 증가하면 그만한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에 대안 완성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실제 건보공단은 권고대로 기준을 완화할 시 재정 등에 미치는 영향 등을 알아보기 위해 조사하고 있다.

또 건보공단은 현행 규정상 국가인권위에 권고로부터 90일 안(7월 28일)으로 수용 여부를 통보했어야 했지만, 이달 30일까지 연장한 상태다. 외국인 건강보험 관련 국민적 인식이 좋지 못하다는 점도 이유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개선하면 좋겠으나, 외국인의 건강보험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어 체류자 수나 형평성 등을 들여다봐야 한다”며 “방향을 정리하고 정부와 최종 협의를 거친 뒤 국가인권위에 보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