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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05/31  한중동포신문/재한외국인방송
한국서 15년 일한 요리사 "4년제 대학 나와야 영주권 준대요"

“한국에서 15년 요리사 생활했는데, 인제 와서 대학 졸업장을 따오라니….”
튀르키예 국적의 세르달 아카다(34)는 15년차 베테랑 요리사다.

지난 7일 서울 공덕동의 한 튀르키예 음식점에서 만난 세르달 아카다(34)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는 “세금 한 번 밀린 적 없고, 성실히 일했는데 영주권을 따려면 대학 학벌이 필요하다고 한다”며 “요리사가 꼭 대학을 나와야 하나?”라고 되물었다. 그의 한국어 실력은 유창했다. 지갑을 찾으러 온 손님에게 “좋은 밤 되세요”라고 인사를 건넬 정도였다. 그가 요리사로 일하는 식당은 오후 10시가 넘어서도 손님으로 붐볐다. 대부분 한국인 손님이었으나 고객 응대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르달은 15년 차 베테랑이다. 지난 2009년 성인이 되자마자 홀로 한국 땅을 밟은 후 쭉 요리사 경력을 쌓았다. 이젠 ‘튀르키예로 갈 때보다 인천공항에 입국할 때 가장 마음이 편한 수준’이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올해 초 영주권을 신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체류 기간에 제한이 없는 준전문인력(E-7-2) 비자를 이미 보유하고 있지만, 갱신을 위해 출입국외국인사무소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생활에 질렸다.

최근 튀르키예에서 발생한 지진도 그의 결심에 영향을 줬다. 지난 2월 튀르키예를 덮친 강도 7.8의 대지진으로 그가 살던 카흐라만마라슈의 집이 완전히 무너졌다. 세르달은 “지진으로 돌아갈 튀르키예의 집도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원래 내 세상은 한국에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했다. 실제로 친구도, 일자리도 모두 한국에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마음을 꺾은 건 주변 한국인의 차별도, 직장의 텃세도 아니었다. ‘학벌’과 ‘연봉’이 문제였다. 영주권을 안내하는 행정사는 그에게 “일반영주권(F-5-1)을 빠르게 따려면 4년제 대학을 나와야 한다”고 했다. 대학을 갈까 고민도 했으나 영주권 문턱에는 난관이 하나 더 있었다. ‘돈’이었다. 일반영주권(F-5-1)은 1인당 국민총소득(GNI·연 소득)의 2배 이상을 요구한다. 2022년 GNI는 4220만 원. 세르달의 연봉이 8440만 원을 넘겨야 한단 의미다. 세르달은 “한국인 중에서도 34세에 8500만원 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저출산·고령화의 급속한 진행은 한국에 노동력 부족 문제를 가져왔다. 지방과 도시, 1차·2차·3차 산업을 가리지 않고 인력이 모자라다. 이민 시대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이를 위해서는 적재적소에 외국인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들어온 외국인의 적응을 돕는 일도 병행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외국인은 법의 사각지대로 빠져 사회적 비용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세르달 같은 인력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이미 적응을 잘 마친 ‘검증된’ 외국인을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하면 불필요한 갈등을 피할 수 있어서다.

문제는 한국의 이민 정책이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정부 부처 중 이민 정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곳이 법무부라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유연한 이민 정책이 필요한 시점에 되려 규제와 단속만 강해질 수 있단 지적이 나온다.

김도균 전 제주출입국·외국인청장은 “이민 정책은 미래를 설계하는 일인데 규제 DNA를 가진 법무부와는 결이 안 맞는 측면이 있다”며 “법무부가 사령탑을 맡겠다면 경직된 이민 정책을 넘어 실현 가능한 ‘정주 사다리’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청장은 법무부에서 이민정보과장, 출입국심사과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잘 아는 ‘친정’에 쓴소리를 한 셈이다.

법무부의 ‘규제 DNA’는 체류 자격을 정하는 비자 업무를 보면 알 수 있다. 현행 비자 체계에서 외국인이 정주로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나 다름없다. 규정은 빈번히 바뀌고 조건도 까다롭다. 대분류로 37개(A~H), 소분류로는 250여개에 달하는 복잡한 체계를 외국인이 정확히 파악해 스스로 필요한 기준을 준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무수히 많은 세르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비자 업무에 잔뼈가 굵은 장만익 행정사는 “한국에 10년, 20년 넘게 산 숙련 인력이 높은 비자 문턱에 좌절한 사례는 수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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