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로 설정  l 즐겨찾기추가   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2018.12.16 (일)
글씨크기 크게  글씨크기 작게  기사 메일전송  기사 출력  기사스크랩
 http://www.kcn21.kr/news/2101
발행일: 2012/04/04  한중동포신문/재한외국인방송
서로에게 ‘빚’이 아닌 ‘별’이 도어 가는 우리 부부

며칠전 나는 한국행 재입국 비자를 발급받았다. 요즘 아내는 이제 곧 한국으로 떠나게 될 나를 몸보신 시킨다며 날마다 바삐 돌아친다. 집에서 기르던 씨암닭 2마리 잡고 거기에 홍삼, 황계, 은행, 대추 등 몸에 좋다 하는 약재에다 밤과 마늘까지 넣어 닭곰을 만드는가 하면 날마다 싱싱한 채소에 내가 즐겨 먹는 소고기, 양고기와 물고기를 번갈아 가며 푸짐한 밥상을 차리느라 분주하다. 요즘 이렇게 나에게 지극 정성을 다하는 아내를 보노라니 고마운 마음이 더 간절해진다. 내가 먼 이국타향으로 떠난다고 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시집오는 날부터 남편인 나를 하늘처럼 떠받들며 정성을 다해왔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3년간의 연애 끝에 26살 되는 해 마을 사람들의 축복 속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장차 작가가 되는 것이 나의 유일한 꿈인지라 결혼 후에도 시간만 있으면 책에 묻혀 살면서 글만 썼다. 그러나 결혼 후 일에 바쁘다보니 차츰 책과 글쓰기에 게을러졌다. 그러는 나에게 아내는 밭일, 집안일에서 모두 손을 떼고 오직 책과 글쓰기에만 전념하라면서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다.

그리고 아내는 혼자서 1.2헥타르의 논과 2무나 되는 텃밭을 다루는 한편 시어머니를 살뜰히 모시고 갓난 딸애를 키우는가 하면 집안일까지 모두 도맡아 했다. 그리고 끼니가 되면 한가지 반찬이라도 더 올려놓으려고 애를 쓰곤 했다. 이렇게 아내는 늘 바삐 돌아쳐야 했지만 불평 대신 내가 쓴 글이 신문이나 잡지에 실릴 때면 "너무 행복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러던 중 1996년 봄 나에게 한국으로 돈벌이를 떠날 기회가 생겼다. 당시 중풍에 걸려 거동이 불편한 73세 고령의 어머님과 5살 철부지 딸, 그리고 집 안팎의 일을 모두 아내 혼자에게 떠맡기게 되었으니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는 집 걱정은 아예 하지도 말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내가 한극에 온 후 아내는 가정의 크고 작은 일을 혼자 해결해야만 했다. '과부문전에 시비가 많다'고 아내는 늘 말과 행동에서 매사에 조심했다. 그리고 딸애를 잘 키우고 하루같이 시어머니 병시중을 들면서 2년동안 1.2헥타르의 논농사를 짓고 2무 남짓한 텃밭에 풀 한포기 있을세라 알뜰히 가꾸었다. 그뿐 아니라 삯모, 삯가을, 삯탈곡을 다니면서 번 돈으로 가정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내가 보낸 돈은 한푼도 쓰지 않고 꼬박꼬박 은행에 적금해두면서 오직 나의 귀국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나는 한국에서 일하면서도 지금까지 나에게 시집와 고생만 하는 아내에게 전화할 때마다 내가 너무도 많은 '빚'을 지고 산다고 하면 그는 "이국타향에서 일하는 당신이 고생이 더 많지요. 나야 집에서 편하게 보내고 있어 오히려 '빚'은 내가 지고 살아요"라고 했다.

이토록 착하면서도 강한 아내가 고향에서 든든한 뒷심이 되어 주었기에 나도 한국에서 하루 이틀도 아닌 14년을 힘든 노가다판에서 뼈를 깎이고 기름을 짜이면서도 힘든 줄 모르고 일할 수 있었고 밤이면 밤마다 수시로 옆구리를 파고드는 외로움과 고독, 성적갈증, 그리고 그보다 더 힘든 어려움과 역경도 이겨낼 수 있었다. 하여 지난해 14년만에 드디어 귀국하여 120평방미터짜리 2층집을 짓고 도시 아파트 못지않은 집안장식을 하고 남부럽지 않게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우리 가정에는 늘 행복이 깨알처럼 쏟아진다. 그 행복 속에는 우리 부부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빚'을 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에게 반짝이는 '별'이 되어 믿음과 신뢰, 변함이 없는 사랑으로 부부의 귀중한 인연과 소중한 가정을 지키고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리고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어머니로서 책임과 자리를 지키며 자기의 인생완성을 위해 자신의 꾸준한 노력과 신근한 노동의 대가와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나는 곧 한국으로 떠난다. 나의 발걸음은 가벼울 것이다.
/허명훈

한중동포신문/재한외국인방송의 다른기사보기
 
  l   광고안내   l   구독신청   l   기사제보   l   개인정보보호정책   l   이용약관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