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부터 불법체류자 자진신고 재입국허용, 2007년부터 만 60세 동포 무연고 한국방문과 방취제시험 전산추첨, 8촌이내 친척초청 가능 등 중국조선족동포에 대한 한국정부의 입국규제가 완화되면서 조선족의 한국행이 마치 봇물이 터지듯 한국으로 류입되어 현재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조선족이 40여만 명에 달한다는 한국 법무부의 통계도 있다.
조선족의 대거진출로 한국에서 "조선족동네"가 형성되는 것도 사실이다. 가정의 생계를 위해, 자녀 뒷바라지를 위해 최하층에서 기름을 짜이고 뼈를 깎으며 일하는 조선족이 많다. 궂은 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아껴 먹고 아껴 쓰면서 몇 년을 악착같이 돈을 모은 보람으로 귀향 후 북경, 상해, 청도 등지에서 아파트를 사고 회사를 꾸리며 유족한 생활을 누리는 부자들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 갔다 해서 다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아니, 모두가 돈을 모은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재한 조선족사회에서는 외기러기로 한국에 온 남자들 중 서너명이 돈을 벌고 여자들은 6-7명이 돈을 번다는 말이 유행으로 되고 있다. 똑같은 환경에 똑같은 조건이지만 왜 어떤 사람들은 돈을 벌고 어떤 사람들은 돈을 벌지 못할까!
그 원인을 알아본다면 결국은 자신이 하기 나름이다. 사실 돈을 벌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원인을 알고 보면 벌지 못해서가 아니라 일획천금의 꿈으로, 분에 넘치는 향수로 번 돈을 탕진하기 때문이다.
아래에 필자가 한국에서 16년간 몸을 담고 체류하면서 목격한 진실한 이야기 몇 개를 적어보려 한다.
나와 함께 노가다에서 형틀 목수일을 하는 강씨는 흑룡강성 해림시에서 온 사람이었다. 35세에 난 강씨는 5년전에 한국으로 시집온 여동생의 초청장이 있어 돈을 팔지 않고 한국으로 오게 됐다. 젊고 근력이 좋은데다 일솜씨가 좋고 눈썰미도 있어 한국인 오야지는 초보인 그에게 첫 달부터 일당 6만원을 줬고 그 후부터는 달마다 일당을 만원씩 올려줬다. 그러자 불과 반년도 안 돼 기술공 단가인 일당 12만원을 받게 됐다.
첫 일년간 강씨는 일만 있다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심히 일했다. 노임을 받으면 용돈을 좀 남기고는 전부 집으로 보냈다. 그러던 그가 일년이 좀 지나자 토요일이면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 일거리가 있어도 무작정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현장일이 힘들어 그냥 쉬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과천 경마장으로 가고 있었다. 그해 과천 경마장에서 한해 사이에 1등이 두 번이나 터졌는데 인민폐로 5천만원에 해당되는 한화 50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3대가 뼈를 갂으며 일해도 모으지 못할 천문학적 돈이었다. 그 꿈에 넋을 잃은 강씨는 매주 토요일이면 만사를 제쳐놓고 경마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처음에 강씨는 돈이 적은 당첨권을 사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차츰 이력이 트자 통도 커졌다. 어떤 날에는 하루사이에 2백만원이 넘는 한달 노임을 다 밀어 넣고도 부족해 친구나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서 돈을 꾸기도 했다. 그러나 일확천금의 기회는 시종 강씨에게 차례지지 않았다. 결국 강씨는 집에 돈을 보내기는커녕 빚 독촉에 시달리는 빈 털털이가 되고 말았다. 5년 기한이 차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신세지만 돈 한 푼 없는 그는 결국 불법체류자로 전락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씨는 아직도 허망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기회만 되면 경마장으로 달려간다.
죽마고우인 고향친구 박씨도 한국에 나온지 6년 세월이 되지만 손에 쥔 돈이 없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불법체류자로 숨어살고 있다.
처음 한국에 발을 들여놓은 박씨는 부산에 거주하는 친척의 소개로 전자제품회사에 취직해 월당 140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일욕심이 많은 그는 그것도 부족하다며 휴식일에도 일하고 밤일도 해 결국은 170만원을 받았다.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해줘 용돈을 쓸 일이 거의 없는지라 그는 얼마간의 용돈을 제하고는 노임 전부를 고향으로 송금했다. 그러나 한국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차츰 전화도 적게 하고 송금도 하지 않았다. 아니 송금할 돈이 없었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박씨는 아내와 이별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밤이면 밤마다 외로움으로, 성적 갈증으로 시달려야 했다. 공허감을 달래기 위해 그는 차츰 유흥가를 찾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노래방을 제집 나들듯 하면서 노래방 도우미들과 즐겼다. 가다오다 만난 애인도 세 번씩이나 바꾸고 번마다 돈을 때우다 보니 5년동안 집에 돈을 보내지 못했다. 지난해 고향에 있는 딸애가 대학입시에 성공해 명문대학의 통지서를 받았지만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결국 대학공부를 포기해야 했다. 상처를 받을 때로 받은 아내는 이혼을 신청하고 딸애와 함께 연해도시 어디론가 떠나고 말았단다.
금년에 50세에 나는 길림시에서 온 김씨 여인은 10년전에 한국에 왔었다. 목욕탕에서 때밀이를 하는 일이었지만 첫 5년은 열심히 일한 보람으로 곧 장가갈 아들애 이름으로 아파트도 사놓고 통장에도 적잖은 돈을 저축하게 됐다.
지난 2005년에 자진신고로 귀국했다 2006년에 다시 재입국 한 그녀는 역시 전에 일하던 목욕탕에서 때밀이 일을 했다. 수입도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함께 일하는 조선족 여성이 10년간 만나지 못했다는 친척의 전화를 받고 무슨 "강의"를 들으러 간다더니 "돈벼락을 맞을 기회가 생겼다"며 밤새도록 이야기를 했다.
자기 일에만 열중하며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왔던 김씨는 그녀의 말에 반하고 말았다. 지금처럼 뼈마디가 불거질 정도로 힘들게 일하지 않고도 목돈을 벌수 있다니 너무나 신기했다.
일차성 투자로 안정된 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김씨는 목욕탕 주인의 만류도 뿌리치고 950만원을 투자했다. 또 투자자를 많이 끌어들일수록 많은 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남동생, 시누이는 물론 친구들도 끌어들였다.
그러나 김씨의 화려한 꿈은 곧 깨지고 말았다. 그가 소개한 이른바 일확천금의 기회가 다단계임을 간파한 동생, 친구들이 투자한 돈을 돌려달라고 나섰던 것이다. 빚 재촉에 시달리게 된 김씨는 은행에 적금한 2천만을 몽땅 헐고도 1억 원이라는 빚을 걸머지게 됐다. 고향에 사둔 아들 이름으로 된 아파트를 팔았지만 여전히 천만원이란 빚이 남게 됐다. 김씨도 이젠 5년이란 시간이 다 차가고 있다. 10년 세월을 아글타글 일해 왔지만 결국 빈 털털이로 나앉게 된 김씨는 매일 참회의 눈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 체류하며 허황한 꿈으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 결코 이들만이 아니다. 1등에 당첨되면 중국 돈으로 1억 지어 몇 억이란 거액의 돈을 쥔다며 목돈으로 로또를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요행을 바라며 게임에 빠져있는 사람들도 있다. 또 일하기는 싫고 그렇지만 밥은 먹어야 하니 일당을 번다는 욕심으로 마작, 고스톱으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황금의 땅이라는 한국에 와서 10년씩 체류하면서도 알거지 신세를 면치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삶의 방식이라면 10년이 아닌 20년을 체류해도 당당한 귀향은 물론 집으로 갈 비행기표를 살 돈도 없으니라!
세상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공짜는 없다. 인간세상의 낙과 행복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꾸준한 노력과 신근한 노동을 대가로 했을 때만이 진정한 낙과 행복이 찾아오는 법이다.
다 같이 한국이란 이 땅에서 피땀을 흘리며 일해오는 나로서는 일확천금의 꿈에, 분에 넘치는 사치와 향수의 도가니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간절히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하루빨리 화려란 꿈에서 깨어나 고달픈 이산의 아픔으로 시달리는 고향의 친인들 품에 돌아가라 말하고 싶다. 열심히 일해 자신의 피땀으로 부를 축적하고 하루빨리 고향에 돌아가 가정을 영위하고 날로 황폐화되는 고향을 지키라고 말하고 싶다.
글 / 허명훈